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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dad

수레바퀴의 또 다른 축인 아버지들에게


수레바퀴의 또 다른 축인 아버지들에게
출처;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전혜성 지음)”중에서

앞에서 나는 아내들에게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라고 호소했다.
다시 말하지만 가부장적인 시대로 돌아가라는 뜻이 아니다.
남편이 가장으로서 아버지라는 위치에 서게 되면
남편의 역할을 구별해주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부부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흔히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의 역할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들 하는데, 이 말은 그동안 아버지가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소홀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즉, 오늘날 아들이나 딸에게 아버지가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명심해야 한다.

자기 아버지를 역할 모델로 한 아들에게나 성공한 많은 여자들에게 아버지들이 건넨 사랑과 격려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모른다. 훌륭한 아버지를 둔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자라는지를 안다면 아버지의 역할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는 누군가가 아버지의 역할까지 함께 한다.


우리 집의 경우만 해도 그랬다. 내 남편은 아버지로서 본인의 목적과 의욕이 뚜렷했고 자녀 교육에 성의를 다하는 남다른 아버지였기 때문에 나 역시 엄마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가끔 남편이 오랜 출장을 간다거나 하면 이상하게도 나의 역할이 달라졌다. 남편의 권위가 옮겨간 듯 나는 아이들에게 한층 엄격해졌고 질서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이 하고 있던 아버지 역할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권위로 집안에 질서가 생겨야 엄마의 손길도 따뜻해질 수가 있다. 엄마와 아버지의 역할이 명확하면 아이는 균형을 잡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상징인 미국에서 자란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 유교적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털어놓은 의미에서였지, 아버지가 만들어낸 원칙에 대한 불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나와 남편이 함께 만든 집안의 가훈이나 가치관 등에 100% 신뢰를 보였으며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또 그들의 제자들에게도 전달하고 있다.

‘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가로 평가된다.’
‘실천 없는 이론은 생명력이 없고 이론 없는 실천은 그 혼이 없다.’
理論無實踐卽無生命 實踐無理論卽無魂


아이들이 써놓은 글이나 인터뷰 내용 혹은 신입생 환영사(예일 법대 웹싸이트에 나옴)에서 나는 남편이 강조했던 가치관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을 키울 때 심어주었던 원칙들을 그들의 가정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늘 자정 안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라.’
‘아침은 늘 함께 먹는다.’
나와의 경험이 부드럽고 따스한 감성으로 또는 창조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반면에 아버지의 가르침은 어떤 규정과 행동의 기준을 지키는 것으로 그들의 교육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회갑 기념집에 쓴 글을 보면 아버지가 부드러운 존재는 아니였던 것 같다. 지나친 요구를 하는 ‘독재자’나 기대가 많은 존재 등으로 남편을 표현한 것을 봐선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위적인 모습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과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느끼고, 그런 사랑을 쏟아준 아버지에게 진실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날 때부터 좋은 부모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 아버지는 적게 움직여도 큰 영향을 주는 존재다. 그 점을 늘 마음에 새기고 아이를 대해야 할 것이다. 내 남편은 고단한데도 꼭 아이들과 함께 공부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의 공부 습관은 남편이 만들어 주었고, 실질적인 기초 학습능력을 키워준 것도 남편이다. 남편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과제를 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과제를 만들고 가르쳐주던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를 가리켜 미국표현으로 ‘Born teacher’, 즉 타고난 선생이라고 불렀다.

나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들과 공부를 한다.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했던 공부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기억하기 때문에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며느리들이 우리 아이들, 즉 자기 남편에게 항상 고마워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자신의 일에 탁월한 아들들이지만 아버지로서 좋은 역할 모델이 없었다
면 지금처럼 손주들을 대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을 며느리들도 알고, 지금도 나한테 아들 잘 길러주어 고맙다고 한다.

현재 아버지가 된 나의 아들들은 상을 받거나 연설할 기회가 있으면 꼭 자신의 아이들을 그 자리에 동행한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 눈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최고라고 생각하게 마련이고 그것이 자신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성장하면서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내 아이들이 아버지에 대해 그러했듯이 손주들도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늘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사회생활과 그 안에서 거둔 성과를 가감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른들의 행사에 아이들을 동행하는 일은 또 다른 공부가 된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아버지가 보여주는 사회생활 속에서 공부해야 할 동기를 찾는다.

남편과 내가 모두 계절학기에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고등학생인 우리 아이들도 함께 학교에 데리고 갔다. 여름 방학에도 부모가 모두 집을 비우고 아이들만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으로 아이들은 “그때 참 아버지는 어려운 이야기를 알기 쉽게 또 오래 기억할 수 있게 잘 강연하셨지요.”라고 말하곤 한다. 아마도 아버지를 교수로서 자기들의 역할 모델로 삼는 듯하다.

또 공적인 자리에서 예절을 배울 기회를 갖게 되어 의젓해지기도 한다. 식당에서나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는 떠들지 말아야 한다고 잔소리할 필요가 없다. 조금 지나면 오히려 아이들 자신이 스스로 예의에 맞게 옷을 입었는지 점검하는 수준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사회인 아버지를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에게 매우 큰 교육이 된다.
집 안에서 엄격한 아버지가 사회에서 당당하게 일하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아이들은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고 배울 점을 찾는다. 아버지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역할 모델이 되어주는 것 외에 아버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또 있다. 예전에는 아내가 일을 한다고 하면, 자격지심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맞벌이가 대부분인 요즘에도 아이를 낳으면 여자들이 직장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육아는 전적으로 여자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아버지의 역할에 충실할 것은 물론 아내가 어머니 역할을 잘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아내의 사회생활을 권장하고 혹 아내가 전업 주부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엄마 역시 중요한 역할 모델이다. 따라서 사회생활과 상관없이 늘 자기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이들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자아실현을 이룬 부모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를 존경하며 따를 것이다.
사회에서 자신의 일을 멋지게 해내는 아내를 존중하는 아버지의 모습 또한 아이들을 행복하고 안정되게 만든다. 만일 전업 주부라면 집안일을 하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존중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도 아이들도 음식을 먹고 나선 얼마나 맛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엄마의 정성을 고마워하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작지만 부인, 엄마를 존중하는 마음의 한 표현이다. 어머니에 대한 아이의 태도에는 아버지 영향이 크다. 엄마를 시시하게 여기는 아이가 엄마의 말을 들을리 없다. 아내가 아버지의 권위를 세어주어야 하듯이 남편도 엄마의 권위를 세워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한 조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수레바퀴를 굴리는 일과 같다. 바퀴가 한쪽만 있다거나 바퀴의 높이가 다르면 수레바퀴는 기울어진 채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남편과 아내라는 양쪽 수레바퀴가 서로를 존경하고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자녀 교육이라는 수레를 잘 이끌 수 있다.
이렇게,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이른바 한국의 ‘기러기 아빠’현상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각기 사정에 따라 외국에 갈 수는 있지만, 아버지와 떨어져 살면서까지 배워야 하는 공부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 아이들은 외국의 언어와 공부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버지만이 줄 수 있는 평생의 가르침과 애정은 잃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역할은 그저 돈을 벌어주는 사람이라는 삭막한 개념만이 은연중에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고자 하는 아이의 교육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기러기 아빠’가 되었거나 되어야 한다면, 그 안에서 가능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자주 연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의 변화를 살펴야 한다. 떨어져 있다고 해도 아이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져서 아이들이 아버지의 노력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이 경제적인 지원자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로서 제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메일이나 전화 등을 자주하면서 아이의 변화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같이 홈페이지를 꾸민다거나 해서 계속 함께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외국에서 교육받는 아이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아이의 변화에 맞추려고 노력해야만 아버지 스스로도 아이들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고, 아이와의 관계도 서먹해지지 않는다.
평소 많은 대화를 해두어야 아이에게 아버지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중요한 멘토로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절실한 마음을 담아 온갖 지원을 다해 주고 있다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 입장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밖에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내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식은 안 된다. 아이들의 고민 중에는 분명 엄마가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아버지가 아니면 안 되는 순간도 있다. 그 기회를 아이들에게서 빼앗아서도, 아버지의 자리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아버지는 아주 중요하다.


아버지의 권위 세우기
아버지가 권위를 세워야 함은 당연하지만 강압적인 권위는 아이에게 역효과만 불러일으킨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아버지란 존재를 벽으로 느껴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주장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특히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반대할 때는 반드시 그 이유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오해가 없다.
우리 집의 경우 가장 공부 성적이 뛰어나고 공부에 흥미가 많았던 아들이 미술을 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남편은 그런 아이의 선택에 몹시 화를 내면서 반대했다.
그런데 그 반대 의견을 나타내는 형식이 너무나 거칠고 엄격했다.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아이의 선택에 반대하더라도 아이가 그려놓은 것을 집어 던지거나 해서는 안 되죠. 그러면 아이가 얼마나 충격을 받겠어요? 다른 식으로도 얼마든지 아버지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요?”
나는 아들과 남편을 서로 화해시키고자 노력했다. 사실 나도 남편과 같은 의견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표현방식은 아이와의 관계에 벽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의 발전과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 남편도 설득했다.

나는 아이들을 한없이 사랑하는 남편의 본심을 알고 있었다. 부부가 서로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렇게 갈등이 깊어질 때 더욱 잘 드러난다.
남편과 아이가 평행선을 긋고 있는 동안 나는 아이에게 따뜻하게 다가갔다. 내 어머니가 나의 아버지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했듯이 나 역시 남편과 아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야 했다.
“아버지가 너에게 그러는 것은 너의 미술 실력이나 너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야.
아버지는 미국에 와서 소수민 법학자, 정치학자로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다.
그러니 미국에서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시는 거야. 이런 세상에서 미술로는 제대로 먹고 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니?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너희들이 보다 안정적인 일을 찾기를 바라셔. 나는 네가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주었으면 해.”


아이들도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얼마나 노력하고 소수민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걱정을 쉽게 이해했다. 물론 그 아이가 당장 내 앞에서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오해만큼은 확실히 푸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스스로 의과대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아버지의 강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좀더 깊은 생각 끝에 나온 것이라 미술을 포기한 것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의과대학을 간다기에 왜 하필 의과대학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자기는 손재주가 있고 손으로 일하는 게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일이 잘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나는 남편이 직접 자기가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더라면 그 아들의 고민도 조금 가벼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들은 대부분 말이 없는 편이다. 아이들 또한 표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표현해주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믿음은 아버지만의 믿음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고, 아이들이 맞이할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수레바퀴의 한 축은 다른 한 축과 똑 같은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버지의 존재감을 느끼고 자란 아이들은 훨씬 안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인생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