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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주역들의 현주소 - 한겨레21

‘환란’ 주역들의 현주소 - 한겨레21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80413/1p5r4d01.html


    


(사진/환란 3인방으로 지목됐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경식 전 한은총재와 직무유기 혐의가 드러난 윤증현 전 금융정책실장 (왼쪽부터).)


외환위기에 대한 감사원 특감결과 수사의뢰를 받은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 등 옛 재경원과 한국은행 관계자 16명이 지적을 받았다. 재경원 12명, 한은 4명이다. 재경원 관련 인사들이 수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처분의 무게란 측면에서도 한은을 압도한다.


강경식 전 부총리와 김인호 전 수석비서관은 외환위기의 실상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해서 직무유기 혐의가 적용됐다. 강 전 부총리는 현재 무소속 국회의원이다. 지난해 부총리에서 경질된 다음 한나라당에 입당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김인호 전 수석비서관은 서울 인사동에 개인사무실을 차려놓은 채 여유있게 지내고 있다.


9개 종금사로부터 2백만∼7백만원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옛 재경원 관계자 4명은 검찰에 고발됐다. 이들은 한직으로 밀려났거나 대기발령 상태에 있다. 이종갑 자금시장과장과 안윤철 자금시장과 주사는 각각 경제홍보기획단과 경제정보센터로 옮겼다. 사실상 대기발령을 받은 셈이다. 김병일 서기관은 대기발령을 정식으로 받았다. 진영욱 금융정책과장은 재경부 행정관리담당관의 명을 받아 현재 근무중이다.


외환위기의 중요한 책임자로는 윤증현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비롯한 재경원 고위인사 3명이 지목됐다. 지난해 초부터 외환위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대책을 미리 강구하지 않았고, 대외신인도 제고방안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 과정에서도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해 대외신인도 저하에 한 요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들은 감사원으로부터 징계를 요구받았다. 이들 가운데 원봉희 금융총괄심의관은 이미 새 정부 출범 직후 대기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은 나름대로 비중있는 자리에 가 있다. 윤증현 금융정책실장은 세무대학장으로 영전했고, 김우석 국제금융증권 심의관은 국제금융국장의 중책을 맡고 있다.


갑작스런 개입중단 지시로 외환시장을 교란시킨 주역으로서 김석동 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장을 비롯한 실무자 3명이 인사자료 통보라는 경미한 처분을 받았다. 징계는 아니지만 그 책임은 인정된 것이다. 김석동 과장의 경우 외환위기가 도래하기까지 위험성을 알리는 내부보고를 많이 제출하고 감사과정에서도 비교적 성실히 임했다는 정상이 참작됐다. 이들 가운데 김 과장은 현재 경제분석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머지 2명은 종전처럼 외화자금과장에 남아 있다.


옛 재경원에 비해 한국은행은 전체적으로 외환위기 방지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이번 감사에서 크게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다. 단지 인사자료라는 반창고만 선물로 받았다. 외환보유고를 실제보다 많은 것으로 공표한 책임을 물어 당시 허고광 전 국제부장과 윤여봉 외환기획과장이 대상으로 꼽혔다. 오재권 외환분석팀장은 외채계산을 1백21억달러나 적게 계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성태 기획부장도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금융개혁법 통과를 막으려고 일어난 한은 직원들의 집단행동을 주도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들 가운데 허고광씨는 지난해 봄 한은 금융경제연구소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때 그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러나 이번에 예상을 뒤엎고 빠진 행운아도 있다. 외환위기 당시 재경원 은행보험심의관을 지낸 김진표씨와 금융정책과장이었던 김규복씨, 지난해 한국은행에서 국제담당 이사를 맡았던 심훈, 이강남씨 등이다. 김진표씨는 새 정부 출범 뒤 재산소비세제담당관으로 전보됐고, 김규복씨는 통계연수원장으로 영전했다. 심훈씨는 이달 초 한국은행 부총재로 승진했다. 이강남 이사도 부총재보로 재임용됐다. 단지 담당업무만 기획업무로 바뀌었다


한겨레21 1998년 04월 23일 제204호